
📍 개요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남미로 분류된다. 국토는 약 196만㎢로 한반도의 아홉 배에 달하며, 인구는 1억 2,938만 명으로 세계 열한 번째 규모이다. 인종은 메스티소가 60%로 가장 많고, 인디언이 30%, 백인이 10%를 차지한다. 국토는 석유와 광물 자원이 풍부하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모두 접하여 해상 무역과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고원 지대와 남부 열대 지역의 비옥한 토지는 농업에 적합하다. 교통은 버스 노선망이 잘 발달해 있으나 기차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 역사와 문화
멕시코의 역사는 찬란한 고대 문명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식민 지배를 거쳐 독립과 혁명, 그리고 현대 국가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어왔다.
기원전 1500년경 등장한 올멕 문명은 ‘메소아메리카의 어머니 문명’으로 불리며, 거대한 석두상과 상형문자를 남겼다. 이 문명은 이후 마야, 테오티우아칸, 아스테카에 이르는 후대 문명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세기부터 7세기에 번성한 테오티우아칸은 ‘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불리며,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 케찰코아틀 신전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도시 문명이었다.
마야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발전하여 기원후 250~900년에 절정을 이루었다. 치첸이사와 티칼을 비롯한 웅장한 도시와 피라미드, 정교한 예술은 그들의 뛰어난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20진법과 ‘0’의 개념을 사용한 수학, 정밀한 천문학, 독창적인 문자 체계는 이 문명을 지식 문명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전쟁, 자원 고갈로 9세기 이후 쇠퇴하였고, 결국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으로 몰락하였다.
14세기에는 아스테카 제국이 중앙 고원에 등장하여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웠다. 오늘날 멕시코시티가 자리한 이 도시는 호수 위에 세워진 인공섬에서 출발해 제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아스테카 사회는 정교한 정치 체제와 종교 의례, 특히 인신공희를 통해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도착하면서 제국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었다. 아스테카 황제 모테수마 2세는 처음에 이들을 신으로 착각했으나, 스페인군의 우세한 무기와 전염병, 내부 부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1521년 제국은 붕괴하였다.
이후 멕시코는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원주민들은 가톨릭 개종을 강요받고, 에스파냐인·혼혈인·원주민으로 구분된 엄격한 신분제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식 건축과 제도가 이식되고 원주민의 전통과 융합되면서 오늘날 멕시코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스페인의 힘이 약화되자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고, 1821년 독립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과 미국과의 전쟁으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후아레스 대통령의 개혁, 프랑스 간섭과 공화정 복원, 그리고 디아스 독재가 이어졌고, 마침내 1910년 멕시코 혁명으로 새로운 체제가 수립되었다.
20세기에는 제도혁명당(PRI)의 장기 집권 아래 경제 개방과 산업화가 이루어졌지만, 빈부 격차와 범죄, 정치적 불안정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날 멕시코는 고대 문명과 식민지 유산, 독립과 혁명을 거쳐 형성된 국가로, 피라미드와 대성당, 혁명기념탑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 기후와 풍경
멕시코는 지형과 위도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해안 지대는 열대성 기후로 고온다습하며, 국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부 고산 지대는 건조한 온대 기후로 뚜렷한 우기를 보인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 일교차가 크고, 5월이 가장 덥다.
유카탄 반도의 칸쿤은 열대 사바나 기후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며, 해풍의 영향으로 연중 온화한 기온을 유지해 해양 스포츠가 가능하다.
📍 유네스코 유산
멕시코는 35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멕시코시티와 소치밀코 역사 지구는 아즈텍 유적과 스페인 식민지 건축, 현대 건축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 테오티와칸은 1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번성한 고대 도시로,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마야 문명의 치첸이사는 제의와 천문학적 기능을 지닌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멕시코 피라미드는 정상 부분이 평평하여 신을 모시는 제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는데, 무덤 기능이 중심이었던 이집트 피라미드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 멕시코시티
📍 개요
멕시코시티는 해발 약 2,200m 고원 지대에 위치한 거대 수도로,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것이 집중된 나라의 중심지다. 도시는 1321년 건국되어 7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왔으며, 현재 약 2,300만 명이 모여 사는 세계적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멕시코시티의 기후는 우기와 건기가 있기는 하지만 연중 기온 변화가 크지 않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로, 당시만 해도 멕시코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하철도 한국보다 10년 빠른 시기에 개통되었을 만큼 발전된 인프라를 갖추었지만, 스페인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 국가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멕시코는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등 잠재력은 무궁무궁해 다시 부상할 여력은 충분하다고 한다.
멕시코시티는 전 세계에서 박물관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해발 2,200m의 고원 지대에 자리한 거대한 도시로, 약 2천만 명이 살아간다. 겉으로는 현대적 대도시의 모습이지만 지하에는 아즈텍 문명 유적인 템플로 마요르가 잠들어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1321년에 건국되어 7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정치와 경제가 모두 집중된 중심지이기도 하다.
🟦 기행문 기록
🌗2025.9.25
🔘멕시코시티 국제공항(1:40/10:40)
마침내 남미 여행의 첫번째 땅, 멕시코시티의 국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2터미날은 스카이팀이 이용하는 공항이다. 1터미널은 120년이나 된 공항으로 길이가 매우 긴 곳이라고 한다. 인천 공항에 비해 여러모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입국심사는 비교적 한산했고, 요즘 보기 드문 입국 스탬프를 받으며 여행의 시작을 실감했다.

오후에는 차풀테펙 공원과 차풀테펙 성을 찾았다. 차풀테펙(Chapultepec) 언덕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멕시코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매우 특별한 장소로 알려졌다.
차풀테펙은 나우아틀어(Náhuatl language)에서 왔는데, chapolin(차폴린; 메뚜기)와 tepetl(테펫; 언덕) 즉, 메뚜기의 언덕(Hill of the Grasshoppers)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고대 아즈텍 시대부터 신성한 땅으로 여겨졌고, 멕시코 시티의 수원(水源)이자 왕들의 정원, 그리고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차풀테펙은 멕시코시티 시민들의 대표적인 공원과 문화 공간으로, 울창한숲과 호수, 동물원, 그리고 멕시코 역사를 담은 멕시코 역사 박물관 등이 있어 멕시코시티의 폐(肺)라 불릴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입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공원 한쪽 언덕 위에는 차풀테펙 성이 자리하고 있다.
차풀테펙 성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멕시코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낸 역사 무대였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1783년 이 언덕이 요새화되었고, 18세기에는 웅장한 차풀테펙 성(Castillo de Chapultepec)이 세워져 총독의 거처가 되었다.
스페인 통치가 끝나고도 멕시코는 안정되지 못했다. 대통령들은 외채 부담으로 프랑스 차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채 문제는 프랑스의 개입을 불러왔다. 멕시코는 무려 세 차례나 프랑스의 침략을 받았으며, 그중 한 번은 정복당하기도 했다. 이때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막시밀리안 대공을 멕시코 황제로 옹립했다.
막시밀리안 대공은 차풀테펙 성을 자신의 관저로 삼았다. 그는 성을 유럽식으로 꾸미기 위해 성 주변에 프랑스식 정원을 가꾸고, 궁전 내부에도 화려한 장식을 더해 새로운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공화파의 저항에 의해 총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프랑스의 개입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재건한 인물이 바로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대통령이었다. 그는 원주민 출신으로, 근대 멕시코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이끈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멕시코인들은 그를 “근대 멕시코의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탄생일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키가 147cm로 작은 체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력한 의지와 개혁정신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국제공항이 그의 이름을 따서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이라 불리고 있다.
1933년부터 1943년까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차풀테펙 성은 국립역사박물관(Museo Nacional de Historia) 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층 전시실에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마차, 물품, 집기 등이 막시밀리안 대공과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문장(紋章)과 물품들과 마주보며 전시되어 있어, 멕시코가 겪어온 식민지, 제국, 공화국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막시밀리안 대공 이야기
막시밀리안 대공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1864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지원을 받아 멕시코 황제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바람기가 많았다고 전해지며, 부인 벨기에의 샤를로트 공주(Charlotte of Belgium)는 남편의 행실을 감시하기 위해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직선 대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길이 바로 지금의 레포르마 대로(Paseo de la Reforma)로, 당시에는 궁전에서 교외로 이어지는 프랑스식 대로였고,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가장 상징적인 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의 개입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재건한 인물이 바로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대통령이었다. 그는 원주민 출신으로, 근대 멕시코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이끈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멕시코인들은 그를 “근대 멕시코의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탄생일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키가 147cm로 작은 체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력한 의지와 개혁정신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국제공항이 그의 이름을 따서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이라 불리고 있다.
1933년부터 1943년까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차풀테펙 성은 국립역사박물관(Museo Nacional de Historia) 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층 전시실에는 막시밀리안 대공과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문장(紋章)과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멕시코가 겪어온 식민지, 제국, 공화국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현대에는 차풀테펙 언덕이 멕시코 독립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특히 1847년 미-멕시코 전쟁에서 니뇨스 에로에스(Niños Héroes, 소년 영웅들) 라 불리는 육군 사관학교 생도들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 전화 인사
멕시코 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때 “¡Bueno!”라고 하는데, 원래 뜻은 “좋다, 감 좋다”라는 의미이다. 남미 다른 나라들(특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에서는 “¡Oigo!”(“여보세요, 듣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어요. 즉, 같은 스페인어권이지만 전화 받는 인사말이 지역마다 달라 흥미롭습니다.
⚜️소우마야 미술관

이후 찾은 곳은 소우마야 미술관(Museo Soumaya) 이었다.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이 세운 이 미술관은,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부인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부부가 함께 수집한 16,000여 점의 중세 유럽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건축은 그의 사위 건축가 페르난도 로메로(Fernando Romero)가 맡았는데, 외관은 무려 16,000장의 알루미늄 타일로 덮여 있어 빛의 각도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달리 보인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건물은, 이미 그것 자체가 하나의 현대적 예술품이었다.
▫️1층 – 로비와 대형 조각
먼저 미술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의 대형 조각 작품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과 〈다비드 상〉 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멕시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의 대형 벽화 〈리오 후치탄(Río Juchitán)〉 이 벽면을 장식해, 멕시코적 색채와 힘을 강렬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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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신화와 알레고리: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라는 주제로,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 발전한 신화적 상징과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구 유럽 거장들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미술’**을 만날 수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회화, 그리고 멕시코가 스페인 통치 아래 있던 시절 제작된 종교화와 초상화들이 함께 걸려 있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미술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4층은 **‘낭만주의에서 전위 예술까지’**라는 주제로, 19세기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에서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유럽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5층에서는 **‘멕시코 미술 20세기’**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층에는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등 멕시코 벽화 운동을 이끈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근현대 멕시코 미술의 정체성과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마지막 6층은 **‘로댕의 시대’**를 주제로 한 공간으로, 오귀스트 로댕의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며, 그와 함께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미술관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갤러리아 프라자 호텔(5:30)
숙소인 갤러리아 프라자 호텔에 도착해 310호 객실에 체크인했다. 직원이 짐을 방까지 직접 옮겨주었는데, 별도의 팁은 필요 없다고 했다.
샤워를 하려던 중 샤워기가 고장 나 있어 직원을 불러 수리를 받았다. 이후 저녁 식사를 위해 로비로 내려갔다.
저녁 식사 장소는 호텔 인근의 한국식당 수라상이었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해물탕 등 정겨운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어 낯선 여행지에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호텔이 제공하는 웰컴 드링크를 즐기기 위해 MOOD BAR를 찾았다. 칵테일, 맥주, 음료를 주문해 남미 여행의 첫날을 축하하며, 앞으로 이어질 여정을 위해 건배했다.
🌗2025.9.26(금)
숙소인 갤러리아 프라자 호텔 체크아웃한 후 05:30 호텔 출발을 했다. 새벽이라 교통 정체 없이 30분만에 2공항에 도착했다.
조식 도시락으로 받은 사과와 대형 샌드위치 하나를 나눠 먹고, 나머지는 가이드나 버스 기사라도 드시게 버스에 두고 내렸다.
새벽부터 공항은 이미 붐볐고, 공사 중이라 칸막이가 곳곳에 설치되어 복잡했다.
보안 검색대에서는 하필 정밀 검사 줄에 걸려 불쾌할 만큼 세세한 검사를 받았다. 줄을 잘못 선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이런 경험이 멕시코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탑승 시간이 여유가 있어 라운지에 갔디만 이곳도 줄을 서 대기한다.
라운지 시설은 우리나라 수준에 비할 곳이 없었다. 준비된 스프는 짜고 맛이 없어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무알콜 맥주와 커피, 빵 종류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후 탑승한 비행기는 오전 9시에 출발하는 에어 멕시코 편이었다. 이번 구간도 약 6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정으로, 짧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다. 다행히 이번에도 비즈니스석이라 조금은 편안한 비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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