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지 가람
사찰 내 탑과 금당의 갯수에 따라 형식을 나눈다. 예 일탑 일금당 식.
2. 산지가람
진입공간에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등 삼문(三門)을 배치하고, 이후 누각을 위치 시킨 후 중정에 진입하면서 대웅전, 극락전, 대적광전 등 주요시설을 배치한다.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의 범어사(梵魚寺), 경상남도 양산시의 통도사(通度寺), 경상남도 합천군의 해인사(海印寺) 일주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통도사의 일주문은 문의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라는 현판을 걸어 사찰의 이름을 밝히고 좌우의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와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柱聯)을 붙여서 이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천왕문[天王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불국 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인 사천왕(四天王)이 안치된 전각.

사천왕은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앙하였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천왕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 지점의 동서남북에서 그들의 무리와 함께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고 한다.
일주문과 불이문의 중간에 있으며 대문의 좌우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키고 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천왕문 대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전남 영광군의 불갑사(佛甲寺) 천왕문이 그러한 예이다. 때로는 천왕문 안에 조각상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며 금강역사만을 따로 안치한 금강문(金剛門)을 천왕문 앞쪽에 세우기도 한다.
보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 형태에 맞배지붕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좌우에는 천왕을 2구씩 안치하고 가운데에는 출입통로를 만든다. 조선 인조 때에 세워진 법주사 천왕문은 정면 5칸 구조로 예외적인 큰 규모이다. 천왕상들은 불거져나온 부릅뜬 눈, 치켜올려진 검은 눈썹, 크게 벌린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갑옷을 걸치고 큰 칼을 들고 있으며 마귀를 밟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손바닥 위에 보석을 올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화난 듯한 눈을 가지고 있다.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입을 벌리고 있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검은빛을 띠며 비파를 잡고 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淸淨道場)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는 수행자의 마음 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 한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불이문[不二門]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이 문을 본당에 들어서는 곳에 세운 것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이다. 이같은 불이(不二)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할 수 있으므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들어서는 문으로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도리천에 다다른다. 사찰에 따라서 이름이 다르기도 하다. 불국사 불이문에는 자하문(紫霞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 문에 들어서려면 청운교와 백운교를 거치는데, 이들 다리의 계단은 모두 33개이다. 곧 도리천의 33천을 상징적으로 조형화한 것이다. 자하는 자주빛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의 몸 빛깔을 상징한다. 이 문을 통과해야 부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금강문
불교 사찰 입구의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한다. 흔히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천왕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중 가운뎃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1칸은 바깥쪽 3면을 벽으로 처리하여 안에 금강역사상을 세워 둔다.
금강역사상은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승불교의 《오분율(五分律)》에 따르면 부처가 있는 곳에는 항상 5백의 금강신이 있어 좌우에서 부처를 호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금강역사상을 안치하고 있다.
이중 오른쪽을 지키는 역사가 나라연금강이고, 왼쪽을 지키고 있는 역사가 밀적금강이다. 나라연금강은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하고, 야차신(夜叉神)의 우두머리인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다.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이다.
흔히 사찰의 삼문이라 하면 일주문·천왕문·불이문(不二門)을 말하며, 따라서 금강문을 세우지 않은 사찰도 많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천왕문이 대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찰에 따라서는 금강문 없이 천왕문에 금강역사를 모시기도 하고, 영광 불갑사(佛甲寺)의 경우처럼 천왕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한다.
영암 도갑사(道岬寺)와 공주 마곡사(麻谷寺)에는 해탈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문을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고, 보은 법주사(法住寺)는 4개의 문을 모두 갖추고 있다. 최근에 중수한 사찰은 대개 금강문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大雄殿)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堂宇).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대웅전에는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단(須彌壇)과 신중(神衆)을 모시는 신중단, 그리고 영가(靈駕)를 모시는 영단을 두고 각 단마다 탱화를 모신다. 또 촛대와 향로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해둔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에는 좌우에 협시불(脇侍佛)을 세우는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세우기도 하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세우기도 한다. 이 중 후자의 경우에는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한다.
협시불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세우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부처의 왼쪽에 여의주나 칼·청련화(靑蓮花)를 들고 있거나 청사자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 부처의 덕(德)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은 부처의 오른쪽에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문수·보현보살 대신 부처의 자비를 상징하는 미륵·관음보살이나 지장·관음보살을 세우기도 한다. 한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협시불로 세울 때는 각 여래상 좌우에 다시 협시보살을 두기도 한다.
대웅전에는 또 삼세불(三世佛)이나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삼세를 통하여 불법으로 교화하는 삼세불로는 현세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과거불인 연등불(燃燈佛) 또는 가라보살(迦羅菩薩),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좌우에서 협시하며, 각 협시불 좌우에 석가의 10대 제자 중 가섭과 아난 존자를 협시로 세우기도 한다. 이 때 가섭은 선법을, 아난은 교법을 상징한다. 경상북도 포항의 보경사(寶鏡寺)와 부산 범어사대웅전(梵魚寺大雄殿:보물 434)에는 가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석가여래를 협시하고 있다.
삼신불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으로 구별하며, 일반적으로 법신은 비로자나불, 보신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은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그러나 한국의 대웅전에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비로자나불·노사나불(盧舍那佛)·석가모니불을 모신다. 보은 법주사대웅전(法住寺大雄殿:보물 915)에는 삼신불이 모셔져 있다.
공주 마곡사대웅보전(麻谷寺大雄寶殿:보물 801)에는 극락왕생과 내세의 행복을 주도하는 아미타불과, 고통받는 환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는 약사여래를 석가모니불과 같이 모셔져 있다.
한국의 대웅전 건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 마곡사 대웅보전은 대광보전 뒤 언덕 위에 중층으로 세워졌으며, 법주사대웅전은 규모면에서 두드러지고, 안동 봉정사대웅전(보물 55)은 극락전과 병렬 배치되어 고풍스러운 멋을 낸다. 이밖에 불국사·통도사·쌍계사·관룡사 등의 대웅전이 유명하다.
🍀극락전(極樂殿)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주불을 모시는 불단 위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달고 여의주를 문 용이나 극락조를 조각하여 장식한다. 기둥과 천장에는 단청을 하고 삼존불 뒤쪽에는 극락의 법회 장면을 그린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나 극락구품탱화 등을 건다. 이밖에 후불탱화로는 아미타불화·아미타불내영도(阿彌陀佛來迎圖)·관음도 등을 건다.
본존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로, 무량수불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無量光), 수명 또한 한량없어 백천억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無量壽). 그래서 이 부처를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이라 하고 보광명전이라고도 한다. 아미타전은 이 부처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로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둔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를 상징하는 지혜로써 중생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널리 비추어 삼도의 고(三道苦)를 없애고 끝없는 힘을 얻게 한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데, 한국에서는 고려 및 조선시대에 극락왕생 신앙이 성행하면서 아미타불의 협시로 등장하였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즉 《무량수경》《관무량수경》《아미타경》을 근거로 하여 아미타불을 모시고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세운다. 한국 불교에서는 대웅전·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으로 꼽힐 만큼 중요하며, 대표적인 건물로는 영주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국보 18)을 들 수 있다. 전각은 남향이고 아미타불상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불상 앞에서 기원하는 사람은 극락이 있는 서쪽을 향하게 된다. 부여의 무량사극락전(無量寺極樂殿:보물 356)이나 강진의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국보 13) 등도 같은 경우이다. 김천 직지사처럼 극락전을 아예 서쪽에 동향으로 세운 곳도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불교 사찰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당우(堂宇).

화엄전(華嚴殿)·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한다. 주로 화엄종 사찰에서 본전으로 세우고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蓮華藏) 세계는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라 하여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화엄종의 사찰에서는 주불전이 아닐 경우에는 비로전이라 한다. 화엄전이라는 이름은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대적광전을 주불전으로 할 경우 주불을 모시는 불단 위에 닫집인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삼신불의 후불탱화로는 삼신탱화 1폭을 두거나 불상 뒤에 법신탱·보신탱·화신탱을 둔다. 신중(神衆)을 모시는 신중단, 영가(靈駕)를 모시는 영단(靈壇)의 각 단마다 탱화를 두는데,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영단에는 감로탱화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촛대와 향로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해둔다.
본래 대적광전에는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보신(報身) 아미타불과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을 삼존불로 모셔 이들 세 부처가 삼위일체를 이룬 조화의 세계, 즉 연화장 세계를 재현한다. 법신은 진리 그 자체를 말하고, 보신은 육바라밀(六婆羅密)의 수행을 통해 무궁무진한 공덕이 갖추어진 이상적 부처이며, 화신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따라 특정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는 부처이다.
한국의 선종사찰에서는 대개 삼신불(三身佛) 사상에 따라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을 삼존불로 모신다. 본존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싸쥔 지권인(智券印)이며,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부처(佛), 어리석음(迷)와 깨달음(悟)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비로자나불의 좌우에는 지혜의 신 문수보살과 덕행의 신인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삼존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두어 모두 5불을 모시기도 한다.
🍀명부전
불교 사찰에서 저승세계인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당우(堂宇).

명부란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신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 살면서 미륵불이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용화삼회를 열 때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128개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명계의 왕이다. 본래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각각 독립된 전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豫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된 이후 종래의 현세 기복신앙이 내세 구원신앙으로 바뀌면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고려말 이후 지장전과 시왕전이 명부전으로 결합되었다.
고려말, 조선시대에 그려진 지장시왕도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이 죽은 자의 죄과를 심판하는 모습을 지장보살이 쳐다보고 있거나, 중앙에 주불로 지장보살이 있고 그 좌우에 시왕이 서 있는 형식이다.
명부전은 대개 법당 오른쪽 뒤에 있는데, 사찰내의 다른 전각들에 비해 격이 떨어지므로 건물의 크기나 양식에서 차이가 난다. 전각내의 불단은 대개 ㄷ자형이며 가운데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협시로 지옥을 출입한 승려 도명존자(道明尊子)와 전생부터 지장보살과 인연을 맺었다는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두며, 그 좌우에 명부시왕을 둔다.
앞면과 좌우 벽면에는 지장탱화나 시왕탱화를 모신다. 이 탱화는 고성 옥천사명부전(玉泉寺冥府殿:경남문화재자료 146)의 시왕도나 양산 통도사명부전(유형문화재 195)의 시왕도처럼 시왕을 각각 한 폭으로 그리기도 하고, 승주 송광사(松廣寺)의 지장회상도처럼 지장과 시왕을 한폭의 그림에 담는 경우도 있다.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탱화는 한 폭에 세 명의 귀왕을 그리기도 하였다.
🍀관음전 觀音殿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신 불전.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불국사 경내 무설전 후방에 있으며, 안에는 관세음보살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관음전이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에는 관음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의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관음전 안에는 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류(楊柳)관음·십일면(十一面)관음·해수(海水)관음·백의(白衣)관음 등을 모신 곳도 있다. 그리고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로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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