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세계의 명화> 칸딘스키님께서 2016년에 올리신 글을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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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소, 그리고 진정한 삶의 무게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오래된 쇠고랑 소리와 함께, 한 노인의 삶을 묵묵히 곁에서 함께했던 한 마리 소.
그 영화는 단지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넘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되묻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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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개, 똑같이 충직하지만
소와 개는 모두 사람에게 충직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에게는 ‘귀여움’과 ‘복종’을 이유로 더 많은 애정을 표현하고, 소에게는 ‘우직함’과 ‘노동’을 이유로 묵묵히 기대며 살아왔습니다.
개는 사람의 기분에 맞춰 움직이고, 때론 비굴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소는 순하고 말이 없지만, 코뚜레 하나에 평생을 짐을 지며 살아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문화권에서든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있어도 “소만도 못하다”는 말은 좀처럼 쓰이지 않습니다.
소는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다.
거짓도 없고 위선도 없습니다.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동물, 그게 바로 소입니다.
(글 : 세계의 명화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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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6세기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의 화방, <황금송아지 숭배>, 1594년경 158.8 × 272.2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Italian 16th Century Painter: The Worship of the Golden Calf c. 1594

니콜라 푸생, <금송아지 숭배>, 1633-34년, 캔버스에 유채, 153.4x211.8cm, 내셔널 갤러리
Nicolas Poussin: 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 1633

클로드 로랭, <금송아지 숭배>, 1660년, 캔버스에 유채, 112.8 x156.6cm, 맨체스터 미술관
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
1660 oil on canvas

얀 스텐, <금송아지 숭배>, 1677년,
Jan Steen, Worship of Golden Calf, 1677

벤자민 웨스트, <율법판을 깨트리는 모세>, 1775년,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 미술관
Benjamin West: Moses Breaking the Tablets of the Law 1775

윌리엄 블레이크 <금송아지 숭배>, 1799-1800년, 캔버스에 펨페라, 38x26.6cm, 테이트 브리튼, 런던
William Blake: The Worship of the Golden Calf 1799–1800

에밀 놀데, <금송아지 둘레에서 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88x105.5cm
Emil Nolde: Tanz um das goldene Kalb (Dance Around the Golden Calf)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놀데가 금송아지 숭배 장면을 격정적인 색채와 붓질로 재해석. 종교 비판적 시각을 강하게 담고 있음.

제임스 티소, <출애급기의 금송아지>, 1896-1902년경, 보드에 과슈, 18.6x26.8cm,
James Tissot: The Golden Calf, as in Exodus

프랑스와 피카비아, <송아지 숭배>, 1941-42년,
Francis Picabia, Calf worship
⚜️살아서 세 번 우는 짐승, 소
소는 살아서 세 번 운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어미와 이별할 때, 그리고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
묵묵히 살아가는 소의 삶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운명과도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사나이의 눈물과 비슷하다고도 하지요.
웅크린 채 울지 못하고, 꾹꾹 눌러 삼키며 걸어가는 길.
그 길 끝에 울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참아온 생의 무게 때문일 겁니다.
⚜️소의 철학, 사람의 도리
철학자 사르트르의 『구토』에서처럼 도서관의 책을 알파벳 순으로 하나씩 읽어가는 인물처럼, 소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단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칩니다.
우리는 소처럼 많은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고, 예술처럼 아름다운 무엇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결같은 진심과 성실함이야말로 결국 사람의 도리를 지켜주는 가치 아닐까요?
⚜️사랑의 계절, 그리고 소의 워낭소리
소의 워낭은 짐승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땅을 일구고, 계절을 지나고, 생을 살아낸 시간의 리듬입니다.
워낭소리가 예술로 승화되었던 이유도,
그 단순하고도 숭고한 리듬이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떤 울림을 남겼기 때문이겠지요.
(글 : 세계의 명화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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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I6FA-MdnHk?si=W5vi0lNUtMoRDoiW

엠마누엘 무란트: 오두막이 있는 풍경
Emanuel Murant: A Landscape with Cottages 1646 oil on oak panel 46.5 x 62 cm Upton House

파울루스 포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풍경 속의 소와 양>
Paulus Potter: Cattle and Sheep in a Stormy Landscape 1647 oil on oak 46.3x37.8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알베르트 퀴프, <레넨 부근의 목동이 있는 풍경>
Aelbert Cuyo, Landscape near Rhenen: Cows Grazing and a Shepherd Playing the Flute, c. 1650/55

알베르트 퀴프, <잠자는 목동과 다섯 마리의 소와 함께 도르드레흐트의 먼 전망>
Aelbert Cuyp: A Distant View of Dordrecht, with a Sleeping Herdsman and Five Cows c.1650-52 oil on oak 66.4x100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구스타브 도레, <길잃은 소>, 1852년, Gustave Dore:The Lost Cow 1852

장 프랑스와 밀레이, <들판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집으로 옮기는 농부들> Peasants Bringing Home a Calf Born in the Fields, Jean-Francois Millet, 1864. Art Institute of Chicago

카미유 코로, <소 물먹이는 농부여인>, 1865-70년경, 개인소장
Jean-Baptiste-Camille Corot: Peasant Woman Watering her Cow, c.1865-1870

이반 아이바코브스키, <겨울의 작은 소달구지>, 1866년
Ivan Aivazovsky: Little Russian Ox Cart in Winter, 1866

카미유 피사로, <목장에서 소를 돌보는 소녀>, 1874년,
Camille Pissarro: Girl Tending a Cow in Pasture 1874

조반니 파토리, <농부와 달구지의 휴식>
Pause in the Maremma with farmers and ox-cart, Giovanni Fattori, 1875

툴루스 로트렉, <멍에를 걸머진 소 두 마리>, 1881년
Henri de Toulouse-Lautrec, Two Bulls Wearing a Yoke, 1881

앙리 루소, <소가 있는 풍경>, 1886년,
Henri Rousseau: Landscape with cow 1886
🐄 소의 이름과 명칭, 그리고 영어 표현까지 – 알고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
한국에서 ‘소’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소의 새끼는 ‘송아지’라고 하며, 성별에 따라 수컷은 수소, 암컷은 암소라 부릅니다. 이 중에서도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수소는 ‘황소’라 불리죠.
용도에 따라도 이름이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고유 품종인 한우는 주로 고기 생산을 위해 사육됩니다.
▫️젖소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기르는 소입니다.
소가 사는 곳은 ‘외양간’ 또는 한자어로 ‘우사(牛舍)’라 하며, 소를 사고파는 시장은 ‘쇠장’ 또는 ‘우시장(牛市場)’이라고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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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YD42BXbjFg?si=qLRdzYycXeb7ho4A

조반니 세간티니: 여물통의 갈색 소
Giovanni Segantini: Brown Cow at Trough 1887

조반니 세간티니: 사보닌의 해빙
Giovanni Segantini: The Snowmelt in Savognin / 66cm x 98cm / oil on canvas / 1888

조반니 세간티니: 두 엄마
The two mothers 1889

조반니 세간티니: “라 비타”에 대한 연구
Giovanni Segantini: Study for "La Vita", 1897, Pastel and black chalk over graphite.

조반니 세간티니: 건초 수확
Giovanni Segantini: Die Heuernte 1898

조반니 세간티니: 알프스 3부작, 삶
Giovanni Segantini: Alpine Triptych: Life, 1898~99 235 x 400cm

조반니 세간티니: 알프스 3부작, 자연
Giovanni Segantini: Alpine Triptych: Nature, 1898~99 190 x Segantini Museum, St. Moritz

아크셀리 갈렌 칼렐라, <소와 소년>, 1885년
Akseli Gallen-Kallela: Cow and Boy 1885 Ateneumin Taidemuseo Suomen Kansallisgalleria

헨리 허버트 라 생, <소에게 물주기>, 제작년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Henry Herbert La Thangue: Watering The Cows

헨리 허버트 라 생, <소 여물주기>
Henry Herbert La Thangue: Feeding cows

헨리 라 생, <소 말뚝박기>, 1911년, 캔버스에 유채, 110.5x101.6cm, 캘빈그로브 미술관
Henry Herbert La Thangue: Stumping the Cow

에밀 베르나르, <붉은 소와 목욕하는 여인들>, 1887년
Emile Bernard: Bathers With Red Cow 1887

고갱, <붉은 소>, 1889년,
Paul Gauguin: The red cow 1889

고갱, 농부와 소가 있는 풍경
Paul Gauguin - Peasant Woman and Cows in a Landscape, 1889.

반 고흐, <소들>, 1890년,
Vincent van Gogh: Cows 1890
🐂 영어에서 ‘소’를 부르는 다양한 표현
영어에서는 우리말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명칭을 사용합니다. 기본적으로 ‘소’를 뜻하는 단어는 ox인데요, 이는 원래 짐을 끄는 가축으로 길들여진 수컷을 의미하며, 고대에는 가축 일반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유명한 지명인 Oxford(소가 강을 건넌 여울)도 여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현대 영어에서는 ox의 쓰임이 제한적이고, 그 대신 아래와 같은 용어들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영어에서는 소의 성별과 나이,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사용됩니다.
▫️Cow: 다 자란 암컷 소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소 전체’를 의미할 때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는 dairy cow라고 부릅니다.
▫️Bull: 거세되지 않은 다 큰 수컷 소를 말합니다. 주로 번식용으로 사용됩니다.
▫️Stag: 거세된 다 큰 수컷 소를 가리킵니다. 번식이 목적이 아닌 경우 사용됩니다.
▫️Bullock 또는 Steer: 보통 어린 수컷 소, 특히 거세된 어린 수소를 의미합니다. 도축용으로 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등지에서는 ‘Bullock’을 고기용 수소로 자주 사용합니다.
▫️Ox: 원래는 ‘소’라는 뜻의 일반 단어였지만, 현재는 짐을 끌기 위해 길들여진 거세된 수컷 소를 의미합니다.
▫️Calf: 송아지, 즉 어린 소를 뜻하며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됩니다. 고래나 코끼리의 새끼도 calf라고 합니다.
▫️Musk Ox: 사향소를 뜻하는 말로, 일반적인 소(소과)와는 다른 동물입니다.
또한 ‘cow’는 고래나 코끼리처럼 암컷을 뜻하는 용어로도 쓰이며, ‘calf’도 이들 동물의 새끼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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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XKDu6cdXLI?si=bvyFpspP-CLWDyPh 🟰

일리야 레핀, <소떼들 사이의 젊은 여인들>, 1896년, 캔버스에 유채, 123x190cm, 우크라이나 국립 미술관
Ilya Repin: Young ladies walk among herd of cow 1896 Kyiv National Gallery of Ukreine

에밀 클라우스, <리스 강을 건너는 소들>, 1899년, 캔버스에 유채, 200x305cm, 벨기에 왕립 미술관
Emile Claus: Cows crossing the Lys
리스 강의 다른 얕은 곳에서는 소들이 걸어서, 여울을 건너거나, 말과 수레를 타고, 때로는 보행자를 통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곳 리스 강의 수심이 너무 깊어서 소들은 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콘크리트나 시트 파일로 된 제방 때문에 이러한 건널목이 불가능하며, 강 일부 구간은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과거보다 더 중요한 단절 요인이 되었습니다.

호아킨 소로야, <바다의 소들>
Joaquín Sorolla, Bulls in the Sea, 1903

호아킨 소로야, <바닷가의 소들>, 1916년,
Joaquín Sorolla: Oxen at the Beach 1916

칸딘스키, <소>, 1910년,
Wassily Kandinsky: The cow 1910

존 싱어 사전트, <소의 발굽에 징박기>, 1910년
John Singer Sargent, Shoeing the Ox, 1910

프란츠 마르크, <노란 소>, 1911년
Franz Marc The Yellow Cow 1911

프란츠 마르크, <황소>, 1911년,
Franz Marc: The Steer (The Bull), 1911

피에르 보나르, <나무 뒤의 소>, 1912년,
Pierre Bonnard: Cow behind a Tree 1912

피에르 보나르(프랑스), 외양간
Pierre Bonnard, The Barn (Cow in the Stable), 1912. Thyssen-Bornemisza

피에르 보나르(프랑스), 황소와 아이
Pierre Bonnard.Bull and Child, 1945

카지미르 말레비치, <소와 바이올린>, 1913-14년, 패널에 유채, 48.8x25.8 cm, 러시아 미술관
Kazimir Malevich: Cow and Fiddle 1913

아구스트 마케, <소와 낙타가 있는 풍경>, 1914년, 캔버스에 유채, 47x54cm,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August Macke:Landscape with Cows and a Camel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컸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빌헬름 라흐니트(독일), 소년과 소
Wilhelm Lachnit, The Boy and a Cow

니코 피로스마니, <농부와 소>, 1916년,
Niko Pirosmani, Farmer with a Bull, 1916. Abraham Center, Geneva

바르트 반데르 렉, <여인과 소>, 1918년,
Bart van der Leck: Vrouw Met Koe (Woman With Cow)

에른스트 키르흐너, <황혼의 소들>, 1919년
Ernst Ludwig Kirchner: Cows at Sunset 1919

페데르 묀스테드, <소를 몰고가는 여인이 있는 숲속의 풍경>, 1922년, 캔버스에 유채, 56.6x36.5cm
Peder Mønsted, The Scene of the Forest with a Woman and her Cows

니콜라이 벨스키, <소와 농부가 있는 풍경>, 1930년
Nikolai Petrovich Bogdanov-Belsky: Landscape with Oxen and Farmer. 1930

구스타브 드 스메트, <풀을 뜯는 소>, 1935년
Gustave De Smet: Grazing Cow 1935

스탠리 스펜서, <소들>, 1950년
Cows, Stanley Spencer, 1950

에드워드 힉스, <평화로운 동물의 왕국>, 1834년
Edward Hicks, Peaceable Kingdom, 1834

파울러스 포터, <우유짜는 소녀>, 1646년, 참나무 패널에 유채, 38.1x50.3cm 웰리스 컬렉션
Paulus Potter The Milkmaid 1646

니코 피로스마니, <소젖을 짜는 여인>, 1916년,
Niko Pirosmani: Woman milks a cow 1916

벨라 카다르, <하녀와 소들>, 1938년, 종이에 과슈, 44x59.7cm
Bela Kadar: Milkmaid with cows

파벨 필로노프, <소를 야만스럽게 다루는 인간들>, 1918년
Pavel Filonov: Oxen. Scene From The Life Of Savages, 1918.

에드윈 란세르, <들소의 죽음>, 1836년 Death of the Wild Bull, Edwin Henry Landseer, 1836

피오트르 콘찰로브스키, <송아지의 주검>, 1946년, 캔버스에 유채, 116x89cm, 개인소장
Pyotr Konchalovsky: Carcase of calf, 1946
⚔️ 투우의 역사와 의미: 전통인가, 야만인가?
투우는 고대 로마 시절의 검투 경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오늘날의 스페인식 투우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전했습니다. 18세기 들어 마상(馬上) 투우에서 현재의 도보(徒步) 투우로 형식이 정립되었고, 투우사는 예술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투우는 동물 학대 논란 속에 전통과 폭력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스페인의 정체성과 예술로 간주되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시대착오적 잔혹함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결국 투우는 인간과 동물, 전통과 윤리 사이의 복잡한 경계를 묻는 문화적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QugLFzedHzk?si=Rj28JEi47vlHOaFa

고야, <투우에게 받힌 투우사>, 1793년, Francisco Goya, Picador Caught by the Bull, 1793

고야, <분할된 링에서의 투우>, 캔버스에 오일, 98.4 x 126.4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Francisco Goya Bullfight

고야, <투우>, 1824년, 캔버스에 유채, 49.5x61cm, 개티센터
Francisco de Goya Bullfight, Suerte de Varas 1824

마네, <투우사 복장의 밀레>, 1862년
Edouard Manet, Mlle. Victorine in the Costume of a Matador, 1862 Metropolitan Museum of Art,

마네, <투우>, 1866년
Edouard Manet:!Bullfight, 1866

예한 비베르, <관중들에 인사하는 투우사들>,
Jehan Georges Vibert, The Bullfighters Adoring Crowd,

제한 조르쥬 비베르, <코리다에서>, 1875년, 패널에 오일, 25.1x37.8cm, 개인소장
Jehan Georges Vibert: At the corrida 1875

호아킨 소로야, <투우>
Joaquín Sorolla y Bastida, Bullfight

호아킨 소로야, <투우시합 전>, 1900년경, 캔버스에 유채, 250.8x370.8cm, 미네아폴리스 미술관
Joaquín Sorolla y Bastida, Before the Bullfight
투우 직전의 긴장감 어린 순간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프레데릭 레밍톤, <멕시코의 투우>, 1889년,
Bullfight in Mexico - Frederic Remington 1889

피에트로 콘찰로브스키, <투우>, 1910년,
Pietro Konchalovsky, Bullfight. 1910

후안 그리스, <투우사>,
Juan Gris, The Bull Fighter, 1913

호세 솔라나, <론다의 투우>, 1926-27년경,
Jose Gutierrez Solana, Bull Fighting in Ronda,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투우>, 1927년
Alexandre Jacovleff, Bullfighting, 1927.

프랑스와 피카비아, <투명 속의 투우>, 1927-30년,
Francis Picabia, Corrida-Transparence, 1927-30.

라올 뒤피, <투우>, 1949년,
Raoul Dufy, The Bullfight, 1949
진홍수(陳洪綬, 중국), 노자기우도(老子骑牛图) Lao-tzu Riding an Ox, Chen Hongshou

김홍도, <논갈이, 단원 풍속도첩 중에서>,
종이 27.8x23.8cm 국립중앙미술관

김홍도, <경작도>, 1796년, 종이에 옅은 채색, 26.7x31.6cm, 삼성 리움 미술관

김홍도, <섭우도> 1796년, 종이에 채색, 26.7x31.6cm, 삼성 리움 미술관

김홍도 〈기우부신 騎牛負薪〉, 비단, 25.5×35.7cm, 간송미술관

김시 〈야우한와(野牛閒臥)〉, 16세기, 비단에 엷은 채색, 14.0×19.0cm, 간송미술관

김시, <고목우도>

김시, <우도>

정선, 〈사문탈사(寺門脫蓑)〉. 1741년,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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