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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반

여행기 #8 | 남미5개국 기행 |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에이레스

[🇦🇷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에이레스]

🌗7일차 (2026.10.1)

🔘 라파스 → 산타 크루즈 데 라 시에라

야간 투어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날이다. 라파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6시 20분 비행기로 라파스를 출발해 산타크루즈로 이동한 후, 10시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기로 환승하는 일정이다. 이제는 새벽 이동도 이력이 붙는다.
산타 크루즈 데 라 시에라는 1561년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 볼리비아 동부 저지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해발 400m의 아열대 평원에 자리한 이곳은 원주민·메스티소·유럽 문화가 어우러진 다문화 도시다.

차코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농업·목축·천연가스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현재는 볼리비아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국제 교류도 활발해 고산지대의 라파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현대적인 도시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마침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남미 여행의 또 하나의 큰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 남부에 위치한 세계 8위의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로, 인구는 약 4,600만 명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며 화폐는 페소(ARS)를 사용한다. 안데스 산맥에서 팜파스 초원, 파타고니아 빙하 지대, 이구아수 폭포에 이르기까지 지형이 다채롭고, 자연의 스펙트럼이 넓은 나라다.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이곳은 1816년 투쿠만 회의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사회·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탱고의 발상지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축구는 아르헨티나인의 열정을 상징한다. 팜파스 초원에서 뿌리내린 가우초 문화는 이 나라 정체성의 중요한 한 축이다.

국토가 길게 뻗어 있는 만큼 기후도 다양하다. 북부는 아열대성, 중부 팜파스는 온대성, 남부 파타고니아는 한랭·건조, 서부 안데스는 고산 기후를 보인다. 남반구에 위치해 12~2월이 여름, 6~8월이 겨울이다.

이구아수 국립공원,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 발데스 반도, 케브라다 데 우마우아카는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손꼽히며, 카파크 냐안(안데스 도로망)과 코르도바 예수회 전통지는 이 나라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보여준다.

공항 도착장에서는 아르헨티나 현지 여행사 사장님 겸 가이드 이신 이영남 선생과 보조 가이드 이효정양이 밝은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낯선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기대감—이제 아르헨티나에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르헨티나는 볼리비아와 정반대라고 한다. 볼리비아는 고도가 높고 원주민(인디오) 비중이 높지만, 아르헨티나는 대부분 낮은 지대이며, 인구 대부분이 이탈리아·스페인 후손이라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약 30~40분이 걸린다. 그러나 시내에서 아르헨티나 노년층이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교통이 통제되고 차량 정체가 심해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계획했던 일정을 변경하고 동선을 다시 짜야 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남미에서 가장 활기찬 대도시 중 하나다. 라플라타강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로, 시내 인구는 약 300만 명, 광역권까지 합치면 1,500만 명이 넘는다. ‘좋은 바람’을 뜻하는 이름처럼 개방적인 기운이 도시에 가득하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건축 양식과 도시 분위기가 파리와 비슷해 ‘남미의 파리’라 불리며, 거리 곳곳에서 탱고 공연과 예술적 정취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콜론 극장,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 중 하나인 7월 9일 대로,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같은 축구 명문 구단은 도시의 상징과도 같다.

🔘라 보카

아르헨티나 첫번째 일정은 라 보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끝, 라플라타 강과 맞닿은 항구 마을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과 좁은 거리다. 원래 이곳은 소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였으나, 더 큰 항구가 생기면서 쇠퇴했고, 대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여인숙과 유흥가를 세우며 삶을 이어갔다. 그들의 그리움과 향수가 모여 결국 탱고라는 독특한 문화가 태어났다.

탱고는 처음엔 남자들끼리 추는 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남녀의 춤으로 바뀌었다. 단순한 춤이 아니라 노래와 악기, 절제된 움직임이 어우러진 예술로 발전했고, 지금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탱고’라는 말 자체도 아프리카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치다’ 혹은 ‘당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 보카의 명소인 까미니토 거리는 한때 기찻길이었으나, 지금은 화려한 색채와 벽화로 가득한 거리로 변신했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탱고 노래 「까미니토」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일본 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라 보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징은 바로 축구라고 한다. 실제로 제가 거리를 걸어보니, 보카 주니어스 구단의 본거지가 있는 이곳은 축구 팬들이 찾는 ‘축구의 성지’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거리 곳곳에는 마라도나와 메시의 유니폼과 인형이 전시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축구 관련 용품을 구입하고 있었다.
보카 마을을 떠나올때 마을 한쪽에는 스페인 정착지의 흔적을 보여주는 레사마 공원이 있다. 이곳의 도로는 과거 강물이 흘러가던 길을 따라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산 텔모(San Telmo)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산 텔모에 들어서면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산 텔모 시장(San Telmo Market)이다.

산 텔모는 1500년대부터 형성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져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예술가와 보헤미안들이 모여드는 동네로, 영화 해피 투게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바루소 극장은 산 텔모의 문화적 깊이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공간이다.
1897년부터 이어져 온 이 시장은 지금도 활기가 넘친다.
오래된 철제 구조물 안에는 전통 음식, 골동품, 예술품, 빈티지 소품이 가득하고, 주말이면 거리 전체가 벼룩시장으로 변해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가 모여든다.
오늘날 산 텔모는 오래된 돌길, 시장의 활기, 그리고 예술적 분위기가 뒤섞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로 사랑받고 있다.

🔘석식 – 씨가 라 바까(17:40)



아르헨티나 음식은 주로 소고기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아사도(Asado)가 있는데, 소고기 갈비와 등심을 숯불에 구워 내는 아르헨티나식 바베큐라고 한다. 브라질식 바베큐는 슈하스코(Churrasco)라고 부른다고 한다.

간식으로는 엠파나다(Empanada)가 유명하며, 만두처럼 소를 넣어 만든 요리라고 한다. 인구의 약 75%가 이탈리아계 백인이어서 피자, 젤라또(Gelato), 커피 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Ushuaia) 지역의 털게 요리(Cangrejo de Tierra del Fuego)가 유명하다고 한다.

저녁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 고기집 씨가 라 바까(Ciga La Vaca)에서 했다. 입구에는 샐러드바와 고기바가 마련되어 있어 원하는 만큼 곁들일 수 있었고, 본격적인 메뉴는 아르헨티나식 바비큐, 아사도였다.
아사도는 소의 갈비 부분을 구워내는 대표적인 요리이고, 친추린은 소 곱창, 바씨오는 등심 부위다. 흥미롭게도 돼지고기(쎄르도)가 소고기보다 더 비쌌다.
워낙 고기의 양이 많아 가이드는 주문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바로 ‘뽀끼또’(조금만)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가이드 선생이 한꺼번에 주문을 해주어 실제 주문 시에도 이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치안은 썩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소매치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오늘 식당에서는 우리 일행의 손가방들을 의자에 케이블 타이로 묶어 주었는데, 다소 우스운 광경 같으면서도 훌륭한 예방책이었다. 세심한 배려를 보여준 식당 측의 센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 시작될 엘 칼라파테 빙하 투어를 기대하며 숙소인 사보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 호텔은 과거 아인슈타인과 에바 페론도 이용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